우주에 끝이 있을까.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우주의 끝으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우주가 끝날까. 혹은 공간이 사라질까. 몇몇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마치 언덕을 넘으면 또다른 언덕이 나오는 사막처럼, 우주도 경계를 넘으면 또다른 우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중우주론은, 이렇게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어떠한 다중우주가 있으며,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다중우주에 대해 살펴 보자.
다중우주 아이디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분류법은 막스 테그마크(Max Tegmark, 1967~)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가 2003년 1월 [평행우주]라는 논문에서 제안한 제4단계 분류법1)이다.
1단계는 관측범위 밖에 우주가 여전히 존재하며, 하나하나가 관측범위 내에서 독립된 우주를 구성한다는 주장이다. 물리법칙은 우리 우주와 동일하며, 우주가 무한이거나 충분히 크다면 이 우주들 속에 우리의 도플갱어도 발견할 수 있다.
2단계는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관계가 있으며, 우리 우주와 물리법칙이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다.
3단계는 양자역학에 나오는 다세계 해석이다.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양자역학적 결정에 따라 무수히 많은 서로 다른 우주로 갈라지고 있다. 그 안에 사는 우리는 그저 하나의 우주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4단계는 시뮬레이션 우주다. 정보에 의해 구축된 우주는 상상 가능한 모든 형태를 띌 수 있으며, 이들이 독립된 다중우주를 구성한다.
폴 데이비스(Paul Davies, 1946~)호주 매쿼리대 우주생물학센터 교수는 2004년 논문에서 다중우주를 둘러싸고 “이것이 과학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측범위 안으로 관측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밖’의 존재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데이비스 교수는 “관측할 수 없는 내용을 예측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검증 가능한 결론을 낼 수 있는 이론에서 나왔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중우주를 상상 속의 상상을 의미하는 ‘도깨비 뿔’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관측을 통한 검증, 입자물리 실험을 통한 간접 검증, 그리고 이론 자체의 수학적 엄밀성에 따른 검증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예를 들어 중력파 검증은 우주 탄생 초창기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도록 검출기의 저주파수 감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예 우주로 검출기를 올리는 방안과 지질학적 진동을 줄이는 새로운 검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끈이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인 초대칭 입자를 찾고 있지만, 물리학자들에 따라 지금보다 1만 배 이상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중우주의 존재는 우주 자체의 모습을 밝히는 의미도 있지만 또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가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의 우주에 살고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마치 신이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은하와 생명이 탄생하기 딱 좋지만 전혀 특이한 우주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물리 상수를 지닌 수많은 다중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만이 아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에서도, 다중세계에서도 우리 우주는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우주가 우리 인간이 탄생하기 좋은 조건인 것은 그저 우연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면,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